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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간단하게 호가든을 2병 마시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렸습니다..
이웃 블로그를 이리 저리 기웃거리며 글을 읽고 그들의 하루의 삶, 그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오늘 나는 무얼 이야기 할까하고 생각하던 찰나, 저번의 글에 이어 또, 과거 나의 필름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필름으로 사진을 찍을때 컬러 네거티브를 흑백보다 더 많이 사용했습다. 주로 리얼라 필름을 끼워 넣었지만, 흑백으로 찍은 사진은 대충 5롤 정도 되었죠. 코닥 Tmax 100 혹은 400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 중에 3롤 정도는 직접 현상했고 인화까지 했었습니다. 저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지금에 와서 자가 현상, 스캔을 하려는 결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가자 현상했던 필름의 스캔본은 없어 여기 올릴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 추억을 꺼내보려 합니다.
아래부터는 2006년도에 작업한 사진입니다. 모두 스냅샷이며, 특별한 주재를 담은 사진은 아닙니다. 카메라를 들고 생각이 날때마다 파인더를 보고 셔터를 눌렸지요.
부산대교에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사진 작업이 마무리 되고 몇 컷 남지 않아 현상소 주위를 돌아다니면 한 롤을 채우기 위해 찍었던 사진이기도 합니다. 비가 오는 부산대교 아스팔트위는 어쩌면 그렇게 삭막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2006년 겨울 한 사람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기다렸습니다. 그 곳은 그녀가 첫 부임을 받은 곳이었습니다. 참으로 좋아했던 것 같은, 목슴을 걸고 사랑하고 픈 그런 사람들은 저의 삶에서 기다림 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냥 이 사진을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밀어주고도 당기면서, 앞으로 뒤로, 즐겁게 그네를 탑니다. 아이들은 앞으로의 세상도 앞서거니, 뒷서니거 하는 것, 높이 올랐다가 다시 내려왔다가 하는 그런 세상 살이를 그네를 통해 습득해 가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아니 저의 나이에는 국민학교가 더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국민학교라는 단어가 일제 식민지하의 좋지 않은 의미의 단어라 할 지라도 저는 사실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에게 초등학교의 기억은 5학년으로 올라갈 때, 반이 바뀌고 급우들이 모두 바뀌고,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는 두려움에 그만 집에서는 학교를 간다고 나왔지만, 정작 새로운 교실, 새로운 얼굴이 두려워 밖에 서성이다 그냥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습니다. 약 3일정도 그렇게 학교를 가지 않고 집을 나와 서성였습니다. 그때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결국 4일째 새로운 교실, 급우, 담임을 만나게 되었죠.
아마도 그때는 꽉 막힌 교실이 저에게는 가장 두려웠던가 봅니다.
약속을 하며, 지켜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아십니까?
나 자신은 세상 어디에 가도 존재하는 그 것입니다. 하늘을 봐도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 것이 바로 '나' 입니다.
해변가의 조개는 그의 생을 마감하고, 껍질만을 남겨 두었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황량하고 소음과 매연이 많은 도시의 길가에도 꽃이 핀다는 것은, 그래도 아직은 도시가 살아 숨쉰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불순물로 사람도 식물도 속에서 고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길가에 핀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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